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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언_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김민령 2026.2.15 조회 66

  성 경: 누가복음 23:34

제 목: 1_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중심 내용: 십자가는 심판의 자리가 아니라 용서의 자리이다.

 

I. 십자가는 인간의 영적 무지를 드러내는 자리이다(34c).

예수님의 가상 칠언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구원의 설계도와 같습니다. 그 설계도의 첫 단어는 '용서'였습니다.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의 자리에서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태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영적인 진단입니다. 죄의 깊은 뿌리는 단순한 악의를 넘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적 어둠에 갇혀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십자가 아래의 인간들은 영적으로 매우 무지하고 둔감했습니다. 군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숨을 거두는 발치에서 옷을 차지하려고 제비를 뽑았으며, “남을 구원하였으니 자기나 구원하라며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함께 달린 죄수조차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른 채 모독합니다. 이들의 문제는 증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빛이 비치고 있는데도 영적인 무지로 마음의 문이 닫혀있는 것입니다.

 

II. 십자가는 복수가 아닌 용서를 위해 기도하는 중보의 자리이다(34b).

인간의 무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분노나 복수가 아닌 용서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심판자의 자리에 서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피를 흘리시며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영원한 중보자의 자리에 서서 계셨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벌을 내려달라고 기도했겠지만, 주님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입니다. 복음은 정죄가 아닌 사랑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기도의 대상에는 직접 못을 박은 자뿐만 아니라, 죄와 무관심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세운 우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과하거나 회개하기도 전에 이미 용서의 기도가 먼저 찾아온 것,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물로 주어지는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용서를 받은 성도가 세상을 향해 취해야 할 태도는 비난과 정죄가 아니라, 주님처럼 무릎을 꿇고 용서를 흘려보내는 중보의 삶이어야 합니다.

 

III. 십자가는 고난 속에서도 아버지를 끝까지 신뢰하는 자리이다(34a).

그런데 십자가는 로마 제국의 가장 잔인한 처형 방식이었으며,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자'라는 수치와 고립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존엄이 짓밟히고 하늘마저 침묵하는 것 같은 그 순간에 예수님의 첫 단어는 아버지였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이 단절된 상황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결코 단절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관계의 선언이자 절대적인 신뢰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고통의 절정에서 아버지를 부르셨습니다. 이처럼 고난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무엇을 의지하는지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이해되지 않고 막막한 절망의 순간에도 원망이나 불평 대신 아버지를 부르며 십자가의 신뢰 안에 머무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는 저주의 자리가 아니라 용서와 신뢰의 자리입니다. 이번 한 주 동안 고난을 불평하거나 상처 준 사람을 정죄하기보다, 먼저 주님 앞에 무릎 꿇으며 영적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첫 단어가 아버지였다면, 우리의 고통 속 첫 단어도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 한 단어를 붙들 때 우리는 비로소 정죄가 아닌 중보를 선택하며 십자가의 참된 승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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